어릴 때 집에 <한미 요구르팅>이라는 기계가 있었다. 우유곽에 유산균 분말 넣어서 전기 꽂아 놓으면 요구르트 되는 기계였는데 학창시절 나의 장 트러블을 잘 컨트롤해 준 고마운 기계였다. 그게 벌써 20년 쯤 된 일이네. 수능칠 때 설사 터질까봐 고3 내내 요거트를 달고 살았더랬지.
나중에 결혼하고서 문득 집에서 요거트 만들어 먹고 싶어서 엄마한테 그거 안 쓰면 달라고 했더니 아직도 쓰고 계시다 해서 못 얻어왔다. 그러고 우리는 다른 요거트 제조기를 샀는데 전기 없이(따뜻한 물을 넣어놓고 보온병처럼 해서 온도 유지하는 기계) 만드는 제조기였다. 근데 잘 만들어지지도 않고 요거트 통 매번 세척하려니까 그렇게 귀찮을 수가 없더라고.
그러던 중에 엄마랑 이야기하다가 이 기계 이야기가 나와서 까짓거 우리도 사자 싶어서 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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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명 HMP–1000. 어휴, 근데 생각보다는 비싸더라. 다른 회사 제품도 있는데 역시 스테디 셀러, 오리지날 제품이 좋겠지. 요거트 파우더가 생각보다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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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택배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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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상자. 와, 이렇게 투박한 디자인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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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체 박스 및 요구르트 파우더. 뒤에 보이는 우유는 별매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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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한 사용방법. 엇, 그러고 보니 모델명의 HMP가 Home Made Pure yogurt pot의 약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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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과학책에 나오는 실험 사진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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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체 모습. 20년이 지났지만 별로 바뀐 게 없네. 예전에는 다이얼식이었는데 버튼식으로 바뀐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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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 두 개. 20년 전에는 하나는 투명 뚜껑으로 제조할 때 사용하고 하나는 흰 뚜껑으로 보관할 때 사용했는데 똑같은 것 두개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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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면에 제조일자가 적혀있다. 생각보다 오래됐네. 물건이 잘 안 팔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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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서. 500ml짜리를 만드는데 8시간 걸리고 1,000ml짜리를 만드는데 10시간이 걸리니 유산균은 2시간에 한 번씩 분열하는 모양이다.
만들 때는 빨간 줄 친 부분만 유의하면 된다. 잘 안 보이겠지만 그냥 상온에 꺼내서 2시간 정도 경과하여 미지근해진 우유에 유산균을 넣고 잘 섞어서 통에 넣고 정해진 시간만큼 발효시킨 후 냉장고에 넣어 차게해서 먹으면 끝.
근데 누가 본체에 직접 우유 부을 생각을 하는 모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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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이 설명서가 하나 더 들어있다. 그냥 똑같은 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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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건 요구르트 파우더. 꼭 이걸 넣을 필요는 없는데 왠지 꼭 이걸 넣어야 할 것 같아서 같이 주문했다. 20포에 대략 12,000원이니 개당 600원.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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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먹어도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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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레모나처럼 낱개포장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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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킨대로 하고 타이머를 10시간에 맞췄다. 어릴 때 만들어 본 바로는 종종 실패할 때가 있었는데 그게 아마 찬 우유에 바로 넣고 만들어서 그런게 아닐까 싶어 1시간 정도 상온에 뒀다가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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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침이 밝았다. 10시간 경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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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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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그래서 설명서에서 시킨 대로 2시간 정도 더 발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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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겨우 먹을만 한 상태가 됨. 보기에는 썩 아름답지 않지만…… 제대로 잘 만들어지면 시중에서 파는 떠먹는 요거트처럼 된다. 가끔은 연두부처럼 되기도 하고……. 잘 발효시키려면? 애초에 잘 섞어주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본다.
맛은 아무것도 넣지 않은 요거트 맛이다. 그냥 먹으면 솔직히 맛없다. 사실 시중에 파는 요거트도 무첨가 요거트는 맛없다. 어? 플레인인데 맛있네? 하고 보면 색깔만 플레인이고 달달한 거 들었더라. 1회 권장용량 당 당류 4g인가 7g짜리인가를 먹어본 적이 있는데 그건 진짜 몸에 좋겠더라.
하지만 괜찮다. 뭐라도 넣으면 무조건 맛있다. 꿀 넣어도 되고 잼 넣어도 되고 과일 넣어도 되고…….
장점은,
- 역시 다른 용기가 필요 없다는 것. 그냥 우유팩 째로 만들어 먹고 버리면 되니까 편하다.
- 전기로 돌리기 때문에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쉽다.
- 다른 첨가물을 전혀 넣지 않으므로 건강에 좋다.
단점은,
- 제대로 만들기가 쉽지 않다. 나중에 익숙해지면 성공확률이 높아지지만 그래도 실패하기 쉽다. 하지만 이건 다른 요거트 제조기도 다 마찬가지. 참고로 엄마가 그러는데 파는 요거트 한 숟갈 떠 넣어서 만들면 파우더보다 더 잘 된다고 한다.
- 사실 사먹는 게 싸다. 요거트 1리터 만드는 데 우유값 + 유산균 값 해서 거의 3천 원에서 4천 원 드는 셈인데 시중에 파는 요거트가 그것보다 싸고 편하다.
- 다른 첨가물은 결국 스스로 넣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