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어딜 가나 자동 로밍이 잘 되는 시대다. 나도 지난 번에 태국에 갔을 때 그냥 쓰던 핸드폰을 가지고 갔더니 자동으로 로밍이 되어서 문자도 잘 주고 받고 비록 통화 품질은 엉망이었지만 전화도 써 봤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찾아보니 내 핸드폰으로는 자동 로밍도 되지 않고, 또 집사람 핸드폰은 자동 로밍이야 되겠지만 3G 데이타 까딱 잘못 쓰면 요금이 어마어마하게 나온다기에 그냥 두고 가라고 했다.
아.. 그리고 산 지 일 년이 넘게 사진기 + 오락기 + 전자수첩으로만 쓰고 있던 나의 아이폰을 가져갔다. 어흑흑.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 쓰려고 해도 개인인증 비용 + 번호포기의 압박이 얼마나 거셌던가!!
일단 가기 전에 인터넷을 뒤져 보니 어떤 사람이 핸드폰 매장에서 개통하면 비싸다고 까르푸 같은 데 가면 선불 SIM칩을 판다고 한다. 그래서 열심히 대형 슈퍼를 돌아다녔지만 그런 건 없단다. 생각해 보니 아무리 선불 폰이라고 해도 신원확인도 없이 그냥 전화가 개통될 리가 만무하다.
그래서 지나가다가 vodafone 매장에 들어갔다. 시내에 있는 지점은 복잡해서 개통하는데 한참 걸리길래 포기하고 동네에 있는 한적한 매장에 들어갔다.
아…. 그랬더니 매장에서 영어가 안 통한다. 계속 막 “유어르 아이뽄느.. 모바일르 인떼르네뜨….” 하면서 이탈리아식 억양으로 열심히 아는 영어로 대화를 시도하는데…. 아 정말 힘들었다.
아무튼 그래서 알아낸 결론, WIND나 TIM, 또는 TRE 같은 다른 통신사에서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Vodafone은 이렇다.
처음에 개통할 때 최소 충전 단위는 25 유로다. 지금 환율로 4만원 조금 안 되겠다. 여기에다가 mobile internet 서비스를 쓰겠다고 이야기 해야 한다. 신청한다고 바로 개통되는 건 아니고 일단 전화가 개통되는데 3시간 정도 걸렸고 인터넷이 개통되는데 12시간 정도 걸렸다(개통할 때 준 문서에는 72시간 걸린다고 써 있다). 그러면 이게 1주일에 3유로씩 자동 차감되면서 500MB를 쓸 수 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내가 돌아다니면서 길 찾을 거 다 찾고 인터넷 쓰고 싶은대로 펑펑 써도 차고 넘친다. 앱스토어에서 업데이트만 안 받으면 된다. 처음에 그냥 멋모르고 눌렀다가 한방에 90MB 날아갔다능;;;
그리고 돌아올 때 쯤 요금이 조금 남아서 이거 어차피 다음에 또 언제 이탈리아 오게 될 지도 모르겠고 해서 집에 통화하며 다 탕진했다. 선불이니 혹시나 실수로 돈 더 나갈 일도 없고 마음이 놓인다. 참고로 국제전화를 핸드폰으로 쓰면 엄청 비싸다. 공중전화(걸릴 때 0.5유로 떨어지고 5초에 0.1유로씩 떨어진다)보다 더 비싸다. 국내에서 미리 선불 전화카드를 사서 가는게 제일 싸다. 아, 근데 선불 전화카드가 핸드폰에서는 안된다. 공중전화로 가서 써야 해서 좀 불편함.
이후에 충전하고 싶으면 슈퍼에 가면 충전 카드를 판다. 5유로, 10유로, 15유로.. 뭐 이렇게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덕분에 아주 유용하게 잘 써먹었다. 구글맵을 이용해서 길을 찾고 대중교통 노선 찾기 앱을 이용해서 버스 찾기, 그리고 인터넷을 이용해서 어디가 갈 만한 데인지 등을 찾아 보니 여행이 한결 수월했다. 물론 헤매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지난번처럼 버스 노선을 몰라서 에라이 걷자고 하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걸어가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교외 지역을 탐방하게 되는 그런 일은 없었다. 기차 안을 제외하면 신호도 잘 잡히고 인터넷도 생각보다 느리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배터리가 너무 금방 닳는다는 점이다. 숙소로 돌아올 때 쯤 되면 항상 배터리 표시에 빨간불이 들어와 있었다. 특히 베네치아에서 이것만 믿고 걸어서 숙소 찾아가다가 큰일날 뻔 했다. 아이폰은 어쩔 수 없고 배터리 교체가 되는 스마트폰이라면 넉넉하게 챙겨가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