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 전쟁

요즘 애가 영 밥을 잘 안 먹는다. 정확히 말하면 밥은 잘 안 먹고 간식만 먹으려고 한다. 특히 밥 먹기 전에 어디서 간식 먹고 온 날은 밥을 진짜 깨작깨작 먹는다. 그래서 입맛이 없나 하고 배부르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해서 밥 치우고 나면 간식 달라고 그러고, “아까 배부르다며!” 하면 “아니, 밥 배불러. 간식 배는 안 불러.” 이런다. 진짜 돌아버릴 노릇.

근데 간식은 또 진짜 엄청나게 먹는다. 가만히 두면 정말 푸드파이터처럼 과일이나 과자, 케이크 같은 걸 흡입하는데 간식만 놓고 보면 솔직히 어지간한 성인 여자보다 많이 먹는 것 같다.

밥을 먹을 때도 자기 좋아하는 반찬만 먹으려 해서 별생각 없이 가만히 두면 계란말이, 장조림, 소시지 같은 건 하나도 없고 쌀밥이랑 콩자반, 우엉조림 같은 것만 잔뜩 남겨둠. 그래서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어야지 하고 입에 넣어주면 안 씹고 우물우물하고만 있다가 너무 많이 밀어 넣어서 토하고. 아놔.

그래서 가끔은 반찬들 섞어서 비벼주기도 하고 볶아주기도 하고 아니면 밥과 달걀을 섞어 찌짐으로 만들어 주기도 하고 별짓을 다 해봤는데 그래도 그냥 두면 자기 좋아하는 재료만 쏙쏙 빼먹는 걸 발견함. 이것도 효과가 없고…….

밥을 잘 먹게 하려고 종종 회유책도 쓰는데 이게 참 딜레마다. 밥 잘 먹으면 다 먹고 간식 주겠다고 하면(물론 그렇게 해도 잘 안 먹지만) 밥을 잘 먹는 경우 간식까지 먹으니 너무 많이 먹는 것 같고, 밥을 잘 안 먹는 경우 밥도 남기고 간식도 못 주니 너무 적게 먹는 것 같다. 그리고 마치 “1등 하면 장난감 사줄게.” 식 방법의 전초전인 것 같아서 기분이 별로임. 또, 만약에 실제로 배가 불러서 못 먹는 것이라고 하면 남은 것 억지로 먹다가 토하면 토한 건 버려주니까 이걸 악용해서 일부러 토하게 되는 나쁜 습관이 생길 것 같아서 그런 게 걱정되기도 하고 그렇다.

강경책도 써 봤는데 이를테면 시간을 30 ~ 40분 정도 주고 이 안에 다 안 먹으면 남은 건 무조건 치우겠다고 하고 시간이 다 돼서 치워버리면 울고불고 난리 남. 진짜 나라가 망해도 그렇게 서럽게는 못 울 거다. 솔직히 보고 있으면 나도 마음이 짠함. 먹고 있는데 뺏아 가는 치사한 사람 된 것 같고 막.

뭐, 사실 이러는 건 우리 애만 이러는 건 아닌 것 같고 다른 집 애들도 다 마찬가지일듯 싶다. 어르고 달래고 화도 내보고 화내고 나면 후회하고 이런 일상의 반복. 나도 어렸을 때 어땠나 본가에 가서 들어 보면 밥을 잘 안 먹어서 중간에 치워버렸더니 그 다음부터는 잘 먹더라는 이야기도 하시고, 어릴 때 기억을 떠올려 보면 밥 먹기 싫으니 보리차에 말아서도 주셨던 것 같고 밥에 내가 좋아하는 치즈를 얹어서 먹이시기도 한 것 같고, 특히 아침에는 밥맛이 없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래서 시리얼도 먹어보고 토스트도 먹어보고 했던 것 같다. 고대 그리스 낙서에도 “요즘 애들 버릇없다.” 이런 말이 있었다지.

이상적으로는 식사는 싹싹 비우고 간식은 절제하는 어린이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불가능할 것 같다. 하긴 어른들도 가만히 두면 자기 먹고 싶은 것만 먹기는 하지(내 이야기임). 좋은 방법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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