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기를 구입하였다.

예전에 외가에서 주신 현미가 아주 많은데 이게 참 곤란하더라. 처음엔 그냥 현미로 밥을 해서 먹었는데 이것도 하루 이틀이지 아무리 건강에 좋아도 그 까슬까슬한 식감 때문에 계속 먹기는 힘들더라. 그래서 흰 쌀을 새로 사서 섞어서 먹어보기도 했는데 사람 입맛이 간사한지라 자꾸 백미만 먹게 되더라고. 그래서 현미는 계속 안 먹게 되더라.

그래도 그 쌀이 아주 좋은 쌀이라 계속 묵혀두기는 아깝고 해서 백미로 도정을 좀 했으면 싶던데 이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도정기는 곳곳에 널렸는데 해주는 데가 없다. 마트에서 쌀 사면 원하는 분도로 도정해서 주는데 거기서 산 쌀 아니면 안 해준다. 동네 방앗간에도 다 전화 돌려봤는데 해주는 데가 없음.

그럼 이를 어쩌지, 손으로 일일이 껍질을 깔 수도 없고…… 그래, 그 도정기라는 놈을 직접 사면 안 되겠나?

국산 도정기

근데 가격이 진짜 어마무시하다. 그나마도 많이 내린 것. 내가 1년 전에 봤을 때는 6위에 있는 저 제품이 40만 원 좀 넘었고 그게 제일 싼 거였는데 이제 31만 원짜리도 나왔네(1위에 있는 제품. 추성훈이 모델도 하는 제품이다).

하지만 31만 원도 많이 비싸다. 그래서 검색하다 보니 일본에서 개인용 도정기 문화가 많이 발달했다는 첩보를 입수! 일본에는 동전 넣고 셀프로 도정하는 그런 기계도 있다고 하네. 바로 일마존 검색. 일본에서는 도정기라고 하지 않고 정미기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아마존 저팬

오, 있다. 있어. 가격도 10만 원대로 저렴함. 저기는 없지만 밑에 쭉 내려가면 주방용 가전제품으로 유명한 코끼리 표 제품도 있다. 그건 좀 비쌈.

근데 다른 나라에서 더 싸고 좋은 제품이 있을지도 모르지. 미국 아마존도 검색해 보자.

미국 아마존

음, 일제 도정기를 파는데 더 비싸다. 같은 제품을 일본에서 수입해서 쓰나 봄. 독일은 어떤가?

독일 아마존

독일도 역시 같은 상황.

그럼 중국은?

중국 도정기

중국도 아직 우리나라처럼 개인용 도정기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모양이다. 가격도 20만 원 넘고 뭔가 사고 싶지 않게 생긴 제품들 밖에(…)

그럼 일마존에서 구매하도록 하자.

미치바 레드

내가 선택한 제품은 이것. 검색했을 때 제일 앞에 뜨기도 했고 다른 제품은 색상이 흰색밖에 안 나오는데 이건 흰색, 검은색, 빨간색 중에 선택 가능했음. 아내의 지시로 빨간색을 골랐다.

110볼트만 됨

헛, 근데 100볼트만 된단다. 외국 수출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만든 제품인 것 같다. 이 사실을 아내가 알면 사지 말라고 할 것 같아서 알면서 말 안함(사실 애초에 좀 충동구매로 시작한 물건이라……). 그리고 몰래 변압기도 따로 주문했지롱.

도착

그리고 일주일 정도 걸려 집에 도착했다. 요새 환율이 좋아서 11,900엔 짜리 제품인데 약 11만 3천 원에 구입할 수 있었고, <이하넥스 THE빠른>배송 이용해서 배송비도 18,000원 정도밖에 안 들었다. 게다가 면세범위 안에 들어서 관세, 부가세 다 면제! 14만 원 안쪽으로 샀다. 히히히. 아이 씐나.

찍힌 자국

엇, 근데 박스 옆에 찍힌 자국이 있어서 좀 걱정됨. <이하넥스 THE빠른>배송은 30% 할인해주는 대신 검수, 재포장, 보험 이런 걸 전혀 안해준다. 그냥 자기들이 받아서 그대로 한국으로 쏴주는 시스템. 각오했지만 좀 긴장됐음.

속 포장

속 포장은 이렇다. 세관에서 다 뜯어서 확인한 모양이다. 헛, 근데 그러고 보니 겉에 누런 박스 하나가 끝이었네. 보통 제품사진 프린트한 예쁜 박스가 있고 그걸 밖에 누런 박스에 넣어서 보내줄텐데.

속포장 개봉

속포장을 벗긴 모습. 그 흔한 스티로폼, 뾱뾱이 완충 포장 하나 없다. 그러니까 일본 소비자들도 그냥 이런 상태의 제품을 사고 있다는 이야기인가?? 저 때는 몰랐는데 지금 보니까 좀 황당하네. 나름 그래도 가전제품인데!

설명서가 디펜스

아까 겉에서 찍혔던 부분은 다행히 설명서가 막아준 모양. 제품에는 영향이 없었다. 휴……

이렇게 생겼다

꺼내보면 이렇게 생겼다. 꽤 묵직한데 생각보다 예쁨.

주의사항

이런이런 주의사항이 쓰여 있다.

설명서

설명서. 나는 잘 모르니까 아내에게 해석하라고 줬음.

내부

도정기 내부는 이렇게 생겼다. 아주 단순한 구조인데 쌀을 넣고 돌리면 저 구멍을 통해서 껍질이 밖으로 분리되는 시스템. 이렇게 단순한데 10만 원이 넘다니 좀 비싸다는 생각이 들다가 아니 그럼 한국에서 팔고 있는 제품들은 도대체 얼마를 남겨먹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더라. 심지어 이거 중국 OEM도 아니고 Made in Japan이라 인건비도 비쌀건데 그거보다 더 비싸?? 국산 제품에는 내가 모르는 뭔가 더 특별한 기능이 있나?

버튼

이런 버튼들이 있다. 제일 왼쪽 줄은 아마 쌀가루를 만드는 데 쓰는 버튼이라는 것 같고 A B 적힌 저건 아직 잘 모르겠고 세번째 버튼은 몇 분도로 도정할 것인가 하는 것, 마지막 줄은 쌀의 양을 설정하는 것이다. 일단은 세번째, 네번째 줄만 쓰게될 예정.

분리한 모습

부속품을 다 분리하면 이렇다. 본체에는 돌리는 모터만 있고 나머지는 다 분리 가능. 계량컵도 하나 같이 딸려온다.

전원코드

그리고 전원은 당연히 100볼트….. 빨리 변압기가 와야 써보지……

변압기 도착

다행히 기가막힌 타이밍에 변압기가 도착했다. 변압기인데 박스에 “미니야채”라고 써 있다.

변압기 속포장

속포장.

한일공업 제품

일전에 조 모 학우가 추천해 준 <한일공업> 제품이다. 이 제품이 하도 유명해서 <한일>로 시작하는 짝퉁 제품이 아주아주아주 많다고 한다.

이렇게 생김

내가 산 모델은 1,000W 짜리 강압 트랜스. 저 도정기가 300W 짜리라서 용량이 크지 않은 제품으로 샀다. 용량이 큰 제품은 무겁고 크고 시끄럽다고 하더라고. 근데 이것도 생각보다는 크고 무겁다.

근데 저 제품은 100V 짜리인데 이 변압기는 110V로 강압해준다. 별 문제는 없겠지만 강압기가 주로 일본(100V)이나 미국(주에 따라 100V, 115V, 117V, 120V 등 다양하다고 함) 제품을 쓰려고 사는 것일텐데….. 아, 그래서 중간값으로 대충 절충한 건가? 미세하게 조절할 수 있는 다이얼이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 괜히 찝찝하잖아.

전원은 뒤에

앞면을 깔끔하게 하기 위해 전원코드 꽂는 부분은 뒤에 만들어놨다.

연결한 모습

연결한 모습. 아무래도 변압기가 같이 따라다녀야 하니 어디 둬야 할지 좀 고민이긴 하다.

자, 그럼 본격적인 테스트 들어갑니다.

현미 한 컵

현미를 한 컵 뜬다. 표면을 깎아서 계량하라고 되어있더라.

넣고

현미를 넣고,

백미 1컵 세팅

1컵을 백미로 도정하라고 세팅하고 스타트 버튼을 눌렀다. 아래 동영상을 보세요.

와…… 기대했던 것보다 많이 신기하다. 진짜로 현미가 점점 백미로 변하고 있다. 당연한 건데 왜 이렇게 신기하지?(신기해서 산 건 절대 아님)

끝난 모습

도정이 끝난 모습. 백미가 됐다!!!!!

끝나고 내부

뚜껑을 열고 확인.

밥솥에 부은 모습

밥솥에 부은 모습. 이걸로 밥해먹으니 임금님도 울고갈 흰 쌀밥이 됐다(사실 1컵이라 물조절 하기가 어려워서 좀 질게 되긴 했다). 역시 몸에는 덜 좋아도 맛은 좋지.

남은 쌀겨

그리고 도정 후에는 쌀겨가 이렇게 남는다. 버려도 되는데 이 쌀겨가 그렇게 피부에 좋다고 한다. 팩 하는데도 쓰고 하면 좋다고 하네. 농약이 많이 남아있을까봐 걱정하는데(현미를 씻어서 도정기에 돌릴 수는 없으니까) 쌀겨에는 농약이 거의 없다고 카더라.

간만에 아주 강추하는 제품을 만났다. 아무리 마트에서 비싸고 좋다는 쌀을 사도 도정 직후에나 맛이 끝내주지, 시간이 지나면 밥맛이 금세 떨어지더라고. 근데 애초에 현미 상태의 쌀을 사서 먹을 때마다 그 때 그 때 도정해서 먹으면 밥맛이 좋을 수 밖에 없지. 그리고 저정도 가격이면 솔직히 별로 부담되는 가격도 아니라(게다가 요즘 엔화 환율도 괜찮고) 정말정말 만족스럽다. 완전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