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이사와서 처음 머리 깎아봄. 이발한지는 아직 두 달도 안됐는데 아내가 아침에 내 머리를 보더니 무슨 비틀즈냐고 놀려서 깎으러 나옴. 물금에서는 나름 메이커 미용실에서 이발하던 된장남이었는데 여긴 뭐 그런건 언감생심이고…… 파란색 클럽이라도 있었으면 했으나 그것도 없고…… 지도를 아무리 뒤져봐도 다 처음보는 데라 그냥 가까운데로 갔다.
이발하기 전. 이걸 보고 비틀즈냐고 놀림.
나름 남성 전용 클럽(?)이라 써 있고 가격은 컷트 + 셀프샴푸는 8천원. 도움샴푸 하면 2천원 추가란다. 들어갔더니 손님 한 분이 이미 깎고 계셨다. 이발사는 비니를 쓴 남자분. 보통은 미용실 들어가면 “어서오십쇼, 여기 앉아서 잠시 기다리세요.” 라든가 아니면 이발하는 의자에 앉으라고 하고 “조금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뭐 그런거를 기대하게 되는데 그냥 뭔가 입안에서 중얼중얼 “어서오세요….” 하고 끝.
남성전용 클럽 답게 TV에서는 <UFC 크로캅 vs. 곤자가> 재방송 경기가 나오고 있음. 결과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못봐서 좀 기대하면서 봤다. 이발사 아저씨도 손님 머리깎다 말고 힐끔힐끔 TV 보고 계시고 ㅋㅋㅋ
그러던 중에 앞 손님 이발이 끝나서 “샴푸는 직접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도움샴푸 하시겠습니까?” 하는데 손님이 자기가 직접 감는다 해서 머리 감으러 가심. 근데 보통 이런 상황이면 다음손님인 나한테 “여기 앉으시죠.” 하고 머리 좀 깎다가 앞 손님 머리 다 감고 나면 계산하고 뭐 이런 그림이 나오는데 그런거 없음. 앞 손님 머리 감는 동안 이발사 아저씨는 그냥 카운터에서 커피 즐기시며 UFC 경기 관람하시고…… 이게 뭔가 싶었지만 아, 이게 시골의 여유인가 하며 나도 그냥 크로캅 이겨라 하고 TV나 봤지.
결국 그 손님 나가고 나서야 나보고 앉으라고 하더라고. 그리고 보통은 앉자마자 “어떻게 해 드릴까요” 하는데 그런 것도 없고 그냥 묵묵히 가운만 두르신다. 가운을 세 겹이나 다 두르고 나서야 입안에서 삼키는 목소리로 “머리는 어떻게……” 하기에 곧 민방위 훈련도 있고 해서 “시원하게 스포츠로 밀어주세요.” 라고 했는데 보통 그러면 또 보통 미용실에서는 “얼마나 짧게요?”, “괜찮으시겠어요?” 이런 말이 나와야 정상인데 또 그냥 말 없이 고개를 끄덕거리고 머리 깎기 시작.
보통 스포츠 머리로 해주세요 하면 바리깡부터 들이대시는데 이 분은 열심히 가위질부터 하시더라고. 그래서 윗머리, 앞머리부터 쳐 내고 옆머리는 남기고 나니 이거 뭔 바보 빠꾸도 아니고 진짜 이상한 사람같이 됨. 그리고는 엄청 신중하게 내 머리를 감상하시는데 아, 설마 이 사람 이렇게 깎아주고 땡은 아니겠지, 아무리 내가 스타일에 신경 안 쓰고 사는 사람이라 해도 이건 좀 심한데 하며 걱정했는데 다행히 바리깡을 들고 옆, 뒷 머리도 빡빡 밀어주심. 휴…… 돈 쓰고 손가락질 받을 뻔 했다. 아, 근데 두피에 뭐 나서 아픈데 그냥 바리깡으로 푹푹푹 찍어서 좀 식겁함. 보통 미용실이라면 “아, 아프세요? 죄송합니다.” 했겠지……만 여긴 그런 거 없음.
아무튼 간단히 스포츠 머리로 깎아달라 했는데도 들이는 정성과 시간이 장난 아닌거라. 파란색 클럽 가면 진짜 한 10분이면 왱왱 다됐습니다 하고 끝인데 계속 가위질하고 한번 흠…. 하고 쳐다보고, 좌우대칭 잘 맞는지 보고, 어디 머리카락 삐져나온 데 없는지 보시고 이야 이거 뭔 방망이 깎는 노인도 아니고. 그러는 사이에 크로캅이 이김. 감동.
다 끝나고 나니 나한테도 머리는 직접 감으시겠습니까 도움샴푸 하시겠습니까 해서 직접 감는다고 하고 감고 있으니 또 이 분 카운터에 서서 커피 즐기시고 계시고, 머리 다 감고 나오니 소파에 다음 손님 앉아 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이발사분은 커피를 여유있게…… 그리고 내가 계산하려고 하니 말 없이 다시 앉으시라고 하며 또 마무리 컷트 해 주시고.
그제서야 계산하게 됐는데 여기 쿠폰 10장 모으면 1회 무료 이런거 있는 것 같은데 카드로 계산하며 그런거 물어볼 분위기도 아니고 뭔가 그럼. 괜히 쿠폰 안 주나요 했다가 카드는 안됩니다 하면 무안해질 거 같아서 포기. 나름 남성 전용 클럽이라고 이 주인분 컨셉이 무뚝뚝한 컨셉이신 것 같다. 심지어 깜빡하고 우산을 놓고 와서 다시 가지러 갔는데도 그냥 고개만 끄덕하고 마시는 그 시크함이란!!
그래도 신경써서 깎아주셔서 머리는 마음에 듦. 남자 머리는 남자가 잘 안다고 이렇게 깎을 때 절대 옆머리를 길게 남겨서는 안되는데(그러면 헤이야치 같이 됨) 그것도 잘 해 주시고 좌우대칭도 잘 맞고.
하지만 “아내는 예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이런 일은 없었다.
이제는 군대가냐고 놀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