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 이이는 1582년 12월에 병조 판서에 임명되었습니다. 그의 나이 마흔일곱 살이었습니다. 당시 왕은 귀가 엷은 선조였습니다. 15년째 집권하고 있었습니다.
율곡은 병조판서(국방부 장관)로서 국제정세를 분석한 뒤 이듬해인 1583년 2월에 자신의 정책을 ‘6조계’로 정리했습니다. 조정에 곧장 건의했습니다. 율곡이 으뜸으로 강조한 정책은 임현능(任賢能), 어질고 유능한 사람을 임용하라였습니다. 그랬습니다. 이 또한 오늘의 노무현 정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당시 ‘선조 정권’은 율곡의 6조계를 모르쇠 했습니다. 율곡은 다시 임금 앞에서 ‘양병 십만론’을 제시했습니다. 나라의 기운이 부진함이 극에 달했다면서, 10년이 못 가서 땅이 무너지는 화가 있을 것(不出十年當有土崩之禍)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율곡의 국제정세 분석이 얼마나 예리한가를 보여줍니다. 실제 9년 만에 일본의 침략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10만의 군사를 길러야 한다는 율곡의 간곡한 제안은 묵살 당했습니다. 도승지 유성룡은 “평화시에 군사를 양성하는 것은 호랑이를 길러 우환을 남기는 것과 같다”면서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시국을 정확히 읽은 당대의 지성인 율곡은 “권력을 제멋대로 휘두르고, 임금에게 교만을 부렸다”는 이유로 삼사의 탄핵을 받게 됩니다. 참으로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숨길 수 없는 우리 역사였습니다. 율곡의 다음과 같은 탄식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줍니다.
“유성룡이 재주는 훌륭하나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시기하는 병통이 있어 나와 함께 일을 하려 하지 않는다.”
질시에 눈이 먼 유성룡은 결국 전쟁을 맞고서야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시기하는 병통”이 불러온 재앙을 한탄했습니다. 율곡의 10만 양병론은 파벌과 시기로 여론이 바르게 형성되는 것을 가로막을 때 얼마나 큰 위기가 닥칠 수 있는가를 핏빛으로 증언해줍니다.
그래서입니다. 10만 양병론은 나라를 걱정하는 담론에 언제나 ‘단골’이 되어 왔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구국운동’조차 10만 양병론을 들먹입니다.
현재 한국사회의 경제활동 인구는 2200만 명입니다. 경쟁력 있는 0.5%, 10만 명의 인재를 키우자는 목소리가 한국의 재계에서 퍼져가고 있습니다. 10만 인재론은 신자유주의가 요구하는 국제경쟁력 강화론과 이어집니다. 심지어 한미자유무역협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그런 논리에 누군가 반대하면, 변화하는 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사람으로 비난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신자유주의식 경쟁력 강화는 고스란히 양극화 가중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경제와 정치를 지배하는 세력은 이미 대한민국에서 활개치고 있는 신자유주의를 더 강화하려는 치밀한 전략과 전술을 펴나가고 있습니다. 10만 양병론의 교훈조차 신자유주의를 심화하는 데 살천스레 이용하는 모습은 새삼 진보세력에게 경각심을 일으키게 합니다.
그래서입니다. 신자유주의가, 한미자유무역협정이, 미친 바람처럼 몰아치는 겨울의 한복판에서 당신께 다시 편지를 띄우며 묻고 싶습니다.
정작 ‘10만 인재’가 필요한 것은 진보세력이 아닐까요? 민중의 고통을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10만 명만 힘을 모은다면 한국 사회의 풍경은 질적으로 바뀔 터입니다. 새로운 사회를 열어가는 그 길에서 눈빛 맑은 당신과 가슴을 열며 소통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자주 편지 드릴 것을 약속드리며 총총 줄입니다.
요즘 한겨레 뉴스레터에는 내 마음에 와 닿고, 나에게 힘을 주는 좋은 글이 참 많다. 무언가 잘못되었으면서도 왜 잘못되었는지 지적하지 못했던 나로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