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학교 기술시간이면 나는 으레 고민하곤 했다. 당시 컴퓨터에 관해 배우던 때였는데, 순우리말 표현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모든 컴퓨터 용어를 순우리말로 바꾸어 썼다. 그래서 새로운 낱말이 나올 때마다 머리를 쥐어짜며 고민해야 했다. 요즘은 시들해진 것 같지만, 당시(이야기 6.0을 이용해서 모뎀으로 천리안하던 시절)에는 정보통신 업계에서도 순우리말을 널리 사용하려는 노력이 한창이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셈틀(컴퓨터), 글쇠(키), 글판(키보드), 생쥐(마우스), 풀그림(프로그램)….
등이 있다. 나는 당시 훨씬 더 다양한 우리식 표현을 사용했으나 워낙 오래되어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나 필기를 그런 식으로 하는 학생은 전교에서 나 뿐이었고, 내 공책을 빌려간 많은 친구들은 내가 쓴 낱말이 무슨 뜻인지 종종 되묻곤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표준’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어차피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아서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다면 고집스럽게 낱말을 우리식으로 고쳐 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차피 우리나라만 벗어나면 그 누구도 ‘셈틀’이나 ‘글쇠’가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한다. 게다가 정보통신 분야는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것도, 우리나라에서만 발달한 것도 아니다. 굳이 고집을 피울 필요가 있을까 생각하고 마음을 돌렸다.
2.
대학교에서 대학물리 과목을 들을 때, 나는 또 한번 문화적 충격을 느꼈다. 교재는 ‘새대학 물리’라는 책이었는데 모든 용어를 순우리말로 순화시켜 사용하는 신선한 경험을 했다. ‘마찰력’을 ‘쓸림힘’으로, ‘마찰계수’를 ‘마찰곁수’, ‘토크’를 ‘돌림힘’으로, ‘코일’을 ‘줄토리’ 등으로 쓰는 식이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친구들은 어이없고 너무 어렵다고 ‘새대학 물리’책을 맹렬히 비난했고, 새로운 용어에 익숙해지느라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했다. 실제로 순우리말 물리 용어들을 처음 접했을 때의 생소함과 어색함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차츰 새로운 용어에 익숙해졌고, 더 이상 ‘마찰력’을 ‘쓸림힘’이라 부르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3.
‘고수부지’, ‘육교’라는 일본식 표현을 ‘둔치’, ‘구름다리’로 우리말로 바꿔 부르자는 주장이 나온지도 한참 되었건만 여전히 우리 곁에는 ‘당구대’를 ‘당구다이’로, ‘민중’을 ‘민초’로, ‘어묵’을 ‘오뎅’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35년간의 일제 강점기는 우리 민족에게 엄청난 비극이었다. 더욱 불행한 것은 우리의 문화와 말글에 미친 영향은 해방 6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영향이 너무 깊숙이 침투한 나머지 오히려 순우리말을 사용하려는 사람이 이상하고 별난 사람 취급을 받는 실정이며, 근래 들어서는 일본의 최신 문화를 아무런 비판없이 답습하는 식자층과 젊은이들 때문에 우리말글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런 세태에서 순우리말글을 지키려는 사람은 시대착오적이며 수구적인 사람이라고 비난을 받게 되고 그나마 소수이던 사람들은 더욱 위축되어 감히 한글사랑에 대한 자기 주장을 입밖에 꺼내기조차 힘들게 되었다.
대세가 기울었다면, 그리고 대세를 따르는 쪽이 훨씬 익숙하고, 훨씬 경제적이라면 그렇게 하는 쪽이 옳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막말로, 대한민국 포장마차의 90% 이상이 ‘어묵’을 버젓이 ‘오뎅’이라고 쓰고 있는 현실에서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잡시고 이를 바로잡자는 주장을 경제적으로나, 효율적으로나 불합리하다며 매몰차게 몰아붙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이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옳은 길이라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세계 지도의 97%가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 하여, 우리나라 사람이 “대세가 그러하니 우리도 ‘일본해’라고 쓰는 것을 따르자.”라고 차마 주장할 수 없듯이,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마땅히 순우리말 쪽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옳지 않겠나? 팔이 밖으로 굽으면 부러지고 말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