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한-미 FTA] 과연 영화인의 밥그릇 싸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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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과연 영화인의 밥그릇 싸움인가

건강보험 덕분에 치료 잘 받아 건강해지면 보험을 해약해야 하나
자유경쟁 체제에서 강자가 이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자명한 것

▣ 김형준/ 한국영화제작가협회장

얼마 전 <독도수비대>라는 영화를 준비하면서 1998년 체결돼 이듬해 1월에 발효된 한-일 어업협정 때 독도가 한-일 공동관리 수역에 포함됐다는 사실을 알고 격분한 적이 있었다. 정부의 심약한 외교력 때문에 우리 땅 독도는 한국과 일본 누구도 배타적인 지배권을 행사할 수 없는 공동관리 수역 내에 있는 섬으로 자리매김됐다. 결국 정부의 외교력 부재가 독도를 계속 논란이 되고 있는 양국의 분쟁지역으로 비쳐질 소지가 있는 곳으로 만든 것이다.

평균 제작비 600억원과 30억원의 경쟁

당시 국민들이 한-일 어업협정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겠는가? 한-일 어업협정이 어민에게만 영향을 끼치는 줄 알고 있었지 이런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줄은 대부분의 국민들은 알지 못했다. 정부와 여당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국민을 오도했기 때문이다. 실로 참담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일 독도가 한-일 공동관리 수역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제대로 알았더라면 국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협정은 타결되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란 한 나라의 문화를 대표하는 표현매체다. 그리고 스크린쿼터란 대한민국의 문화 언어인 한국 영화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보호장치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불씨를 지켜줘 오늘날 우리나라를 아시아를 주도하는 영화 강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준 것도 스크린쿼터이다. 그런데 이제 잘되고 있으니 그 보호막을 거둬야 한다고 한다. 즉, 결과를 보고 원인을 제거하라고 한다. 이는 몸이 아픈 사람이 건강보험 덕분에 치료를 잘 받아 몸이 다시 건강해졌다고 보험을 해약하라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그것도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과제가 아니라 전제조건으로서 말이다. 문화는 한 나라의 정신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일은 주권을 가진 국가로서 치욕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즘 정부는 미국과의 FTA 체결이 우리나라가 잘살게 되는 길이라며 다시 국민들을 오도하고 있다. 대다수 국민들을 국익을 위해서라면 많은 것을 포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경제학에 문외한인 사람이 상식적으로 생각하기에도 자유경쟁 체제에서는 강자가 반드시 이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래서 운동경기에 체급이 있는 것이며, 골프에도 핸디캡이 있는 것이다.

누군가 링에서 격투기의 황제인 효도르와 자유롭게 경기를 벌인다고 상상해보자. 아마도 그와 경기를 벌이는 사람은 1분 이내에 사망에 이를 것이다. 적어도 필자는 헬멧을 쓰고 효도르는 한 팔과 한 다리 정도는 못 쓰게 묶어놓는다면 결과가 달라질지 모르겠다. 하물며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한국 영화에 전세계 시장의 80%를 장악하고 있는 할리우드 영화와 자유롭게 경쟁하라니…. 할리우드 영화의 평균 제작비는 600억원 정도가 되고, 한국 영화는 30억원 정도다. 그럼에도 극장에서는 같은 입장료를 받으며 상영되고 있는데, 자유롭게 경쟁하라고 한다.

얼마 전 정부는 스크린쿼터를 축소하는 대신 영화 육성책으로 4천억원이라는 막대한 돈을 제시했다. 그것도 절반인 2천억원은 관객에게 준조세 성격으로 입장료에서 5%씩을 떼내어 자금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입장료 인상은 불보듯 뻔한 일이며, 관객에게 입장료 인상의 요인으로 한국 영화를 탓하게 만들었다. 물론 금액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미국에서는 4천억원이란 돈으로 <킹콩> 같은 영화는 두 편도 못 만든다. 그걸로 한국 영화를 육성하겠다고? 어처구니없다. 돈으로 문화를 팔지 말고, 그럴 돈 있으면 독거노인들이나 결식아동들을 도와주는 것이 국민을 돕는 일이다.

그 4천억원은 결식아동에게 줘라

이제는 우리 국민들이 정부의 오도를 액면 그대로 믿지 말고 관심을 가져주어야 한다. 이건 영화인들의 밥그릇 싸움이 절대 아니다. 국익을 위해 돈이 필요하면 남대문이나 고려청자 같은 국보를 내다팔면 된다는 식의 논리에 싸우는 것뿐이다. 스크린쿼터 축소의 역풍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파문이 오래 지속되면서 한국 영화는 설 땅이 없어지는 날이 올 수도 있다. 그때 오늘의 영화인들이 어떤 평가를 받을지를 생각하면 답답하기만 하다. 적어도 한국 영화를 4천억원이라는 돈과 엿 바꿔먹은 파렴치한들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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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효도르와 자유롭게 경쟁할 수는 없지…… 역시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야 한다. 눈 앞의 현실을 보고 감정적인 판단을 할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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