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분의 가치

나는 새벽 네 시 사십 분 쯤 잠이 들었다.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전화 벨이 울렸다. 대기실은 어수선해졌고,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아차!’

시계를 보니 5시 15분이다. 15분 늦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평소 성 반장님은 아침에 늦어도 독촉전화를 하지 않았는데……

“빨리 오시랍니다.”

황급히 옷을 챙겨입고 대기실 밖으로 나선다. 이제 그 우렁찬 핸드폰 알람 소리도 못 듣는 병신이구나 자책하며 잠에 덜 깨어 정신 없는 상태로 비틀비틀 걸어간다.

“반장님. 주무십시….. 어라?”

아무도 없다. 출동난 것도 아닌데 상황실에 아무도 없는 것이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앉아 TV를 보며 생각해 본다. 혹시 내가 시계를 잘못 본 걸까? 아니다. 분명 5시 15분이다. 하는 수 없다. 일단 반장님을 찾아 보기로 한다.

“반장님! 반장님!”

소방서 이곳저곳을 찾아 다닌다. 그러다 수상해 보이는 방 문을 발견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방문을 열고 들어간다. 너저분한 방이다.

“왔어?”

성반장님이다. 이 너저분한 방에는 왠 일일까? 게다가 온 몸에 파스를 붙인 채로 누워 계신다.

“아니, 어찌된 일입니까?”

“아, 오늘부터 을지훈련 기간이야. 그러니까 근무 없어. 여기 뜨뜻한데 와서 너도 좀 더 자.”

“…… 네.”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지만 잔다는 것은 좋은 일이므로 일단 이불에 나도 누웠다. 바닥은 뜨뜻했고 잠이 쏟아졌다. 하지만 아무래도 직원과 함께 있는 것은 불편하다. 대기실로 가는 것이 좋겠다. 나는 허리를 펴고 일어나 앉았다.

“아니다, 대기실이 더 편하겠지? 대기실 가서 자.”

어찌 알았는지 반장님께서 먼저 가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반장님도 주섬주섬 옷을 입고 일어나신다. 우리는 함께 복도로 나섰다. 가는 도중에 어디선가 나타나신 윤 실장님도 나를 따라 오셨다.

대기실 문을 여는 순간 내 눈에 띈 것은 정말 맛있어 보이는 족발과 보쌈이었다. 그러고 보니 밤에 시키고 잤던 듯도 싶다. 어쨌거나 정말 맛있어 보였다.

오늘따라 이 야식은 포장이 너무 잘 되어 있었는데, 얼만큼 잘 되어 있었냐 하면 그냥 비닐만 열면 바로 음식물이 드러나 바로 먹을 수 있게 되어 있을 정도였다. 다만, 보쌈은 비닐 안에서 그릇이 터져버려 안타까웠다. 비닐 바닥에 쏟아진 보쌈을 그릇에 부어 놓으니 이런 산해진미가 세상에 또 없다.

“와~ 맛있게 먹겠습니다.”

젓가락을 집어 든 순간,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본부에서 나온 감찰이다. 젠장. 이제 막 먹으려던 참인데. 나는 사이퍼와 함께 대기실에서 뛰쳐 나왔다. 그 순간 나는 트리니티가 되었다.

“잡아라!!”

스미스 감찰들이 나를 쫓기 시작했다. 나는 사이퍼를 안고서 열심히 달렸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나는 날아올랐다. 나는 무서운 속도로 하늘을 날기 시작했고, 스미스 감찰들은 땅 아래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이제 살았군. 설마 하늘까지 쫓아오지는 못하겠지.”

그러나 더 큰 난관이 내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 저 편에서 UFO 수천 대가 나타났다. 그리고 레이져포로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악! 젠장!”

나는 사이퍼와 함께 아슬아슬한 곡예비행을 했다. 고층 빌딩 숲 사이를 굉장한 속도로 통과하며 레이져를 피하는 일은 아주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UFO들은 계속해서 나와 사이퍼를 뒤쫓아왔다. 계속 도망만 다녀서는 안될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조금 더 높은 곳에 위치를 잡고 UFO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 공격은 모두 헛수고였다. UFO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 사이퍼! 일단 안전한 곳으로 피하고 나중에 다시 만나자.”

나는 우선 사이퍼가 안전한 장소로 대피할 때 까지 시간을 벌어주었다. 그런 후 나는 땅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서 돌진했다. 그 속도는 너무 굉장해서 실제로 인상이 찌푸려지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였다.

눈 앞에 한적한 건물이 보였다. 낯익은 건물이었다.

“좋아, 내 자취방이군.”

그 건물은 실제로는 대아고등학교 건물이었다. 나는 건물 뒷편으로 내려앉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더 이상 적들은 따라오지 않는 것 같다. 하긴, 이런 시골까지 쫓아오는 것도 무리겠지.

사방은 고요했다. 쥐새끼 하나 없는 듯한 조용한 곳이었다. 주변을 살펴보았다. 1층 화장실에 누군가 있는 것이 보인다. 아아……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브래드 피트의 아빠 역으로 나온 할아버지다!!! 그 할아버지는 비장한 표정으로 누군가에게 엽총을 겨누고 있었다.

“탕!”

털썩. 누군가 쓰러졌다. 내 옆에서 노숙자로 보이는 한 할아버지가 쓰러져 죽고 있다. 순간, ‘쓸모 없는 인간은 총으로 쏘아 죽여 버리는 일본의 새로운 풍습!’이라는 자막이 일본어로 하늘에 떴다. 놀란 나는 총을 피해 모현단 쪽으로 살금살금 기어갔다.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야!!”

미어지는 가슴을 움켜쥐고 도망 온 운동장. 그 곳에는 원숭이와 고릴라들 수 십 마리가 득실거리고 있었다.

그 중 나무에 매달린 몇 몇 원숭이는 가정용 전화기 수화기 정도 되는 크기였는데 그 옆에 똑같은 크기의 거미(….. 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도 함께 매달려 있다. 거 참 이상한 일이다.

멍한 걸음으로 운동장을 걸어가고 있는데 저 편에서 거대한 육식 만드릴 원숭이가 나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한다. 참고로 나는 만드릴 원숭이를 본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원숭이는 킹콩처럼 묘사되었다.

그 원숭이가 나를 공격했다. 마구 달려오더니 내 등 뒤에 올라탔다. 아주 매서운 공격이었다. 가까스로 업어치기 한 판으로 원숭이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문제는 이 때 부터였다. 하늘에서 비장한 음악이 울려퍼지기 시작하더니 내 양 옆 쪽에서 원숭이 두 마리가 동시에 나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한다. 나는 원숭이들을 한 방에 날려버렸다. 주먹에서 피가 난다. 원숭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제 죽을 지도 모른다.

“띠디디디디디”

그 때 다섯 시를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이 모든 꿈이 불과 이십 분 만에 일어났다. 내가 꿈을 꾸는 동안 바깥 세상은 사실 멈추어 버릴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꿈 내용은 유치해 죽겠는데 이게 이십 분 만에 다 꿔졌다는 게 신기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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