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원두가 다 떨어져서 소소봄에 갔다. 물금 택지에 있는 커피숍인데 사장님이 참 사람이 좋으시다. 좋은 일도 많이 하신다. 여러가지 봉사활동, 기부활동도 많이 하시고 종종 인디 가수들 불러서 작은 콘서트도 열어주신다. 아쉽게도 커피가격이 비싸서 잘 가지는 않는다(근데 오늘 갔더니 메뉴가 많이 바뀐 것 같다).
아무튼 집에 오는 길에 커피 원두를 사려고 들렀다.
카페 내부 모습이다. 분위기 좋다. 원래는 직접 로스팅 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이제는 직접 로스팅도 하시는 것 같다. 오늘은 남자 사장님 안 계시고 다른 여자분이 계셨다.
커피 원두를 달라고 했더니 어떻게 드실 계획인지를 물으시더라. 그래서 그냥 라떼 만들어 먹을 용도라고 하니 어떻게 내려서 드시고 어떤 맛을 선호하시고….. 이런 걸 물으시는데 사실 저는 잘 모릅니다…… 에스프레소로 내려 먹는다고 하니까 드롱기 머신이 있으신가보네요! 하시는데 사실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비싸요……
아무튼 그렇게 커피 취향이랑 블렌드 원두를 원하는지 싱글 오리진을 원하는지 이런 것에 대한 활발한 토론을 거쳤다. 사실 내가 가게에 들어갔을 때 상상한 것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내 원래 상상)
나 : 원두 주세요.
주인 : 어떤 원두로 드릴까요?
나 : 이런이런 원두로 주세요.
주인 : 여기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아무튼 뭔지 몰라도 블렌딩 한 원두를 100g 사기로 결정. 근데 잠시 앉아서 기다려 달라고 한다. 뭐지? 지금 바로 볶아서 주시는 건가!! 근데 뭔가 윙 탁탁탁 쑤와아아아아아아악.
헉! 설마 라떼를 만드시는 건가! 나는 라떼용 원두를 사려고 했을 뿐인데! 어쩌지! 라떼 4,500원인데! 밥도 안 먹었는데! 속 쓰린데!
라고 정신 차려 보니 정말 라떼를 만들어 주셨다. 한 번 맛을 보라고 하신다. 맛이 어떠냐고 물으신다.
“고소하네요.”
하하 하고 웃으시는데 이거 뭐 이미 뭔가 커피 전문가같은 느낌적인 느낌을 풍기고 들어가서 이제 무를 수도 없다. 나는 이제 커피의 달인 행세를 해야 함. ㅠㅠ
그러면서도 혹시 이거 돈 받는건가!! 어쩌지! 나는 달라고 안했는데! 근데 체면이 있으니 내야겠지?
별 생각이 다 들었네(헉! 나중에 이 글을 소소봄 사장님이 보시면 캐민망할듯).
아무튼 만들어주신 라떼는 저번에 바리별에서 먹어본 커피(바리별 카푸치노 이야기) 와는 또 다른 맛이었다. 아…… 그러니까 내가 카푸치노랑 카페라떼 차이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밑에 깔린 커피 맛 자체가 전혀 달랐다. 바리별에서 먹은 커피가 약간 고소하고 진한 느낌이었다면, 여기는 새콤하면서 가볍고 산뜻한 맛이었다(양쪽 다 에스프레소 더블샷을 쓰니 농도의 차이는 아닐 것이다). 굳이 택하자면 나는 바리별 쪽이 내 입맛에 맞지만 소소봄 라떼도 맛있더라. 무슨 원두로 블렌딩한 거냐고 여쭙자. 원래는 3개를 블렌딩하는데 계절에 따라 원두가 달라서 지금은 인도산 원두랑 또 뭐더라…. 아무튼 2개를 섞은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라떼에 넣을 커피와 아메리카노로 만들 커피는 각각 따로 관리한다고 한다. 아마 가게에서 생각하기에 그냥 마시기에 좋은 맛과 우유에 넣어서 마시기 좋은 맛의 최적점을 찾은 모양.
“이걸로 주세요.”
하고 사기로 결정. 100g에 8천원이고 시음한 카페라떼는 종이컵에 담아주셨다(사실 그 자리에서 다 먹어야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무식하게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흡입하고 있었다. 난 너무 소심소심…). 원두도 10g 추가로 더 넣어주셨다.
그리고 그 때 그 때 원두 상태가 다를 수 있으니 항상 시음해 보시고 원두를 구입하라고 하신다. 세상에…… 원두 가격이 8천원인데 4,500원짜리 카페라떼를 시음용으로 주시면 소소봄은 땅 파서 장사하시나요….. 사실 아메리카노로도 내려드릴까요… 했는데 그러면 원두 가격보다 시음한 커피가 더 비싸잖아요….. 정말 뭔가 아낌없이 퍼주시는 가게 같은 느낌….. 소소봄 사랑해요.
먹고 좀 남은 라떼를 아내에게 건네니 엄청 맛있다고 좋아한다. 지금까지 먹은 것 중에 제일 괜찮단다. 집에서도 라뗴를 만들어서 맛보라고 줬더니 역시 제일 좋단다. 사실 나는 약간 우유에 과일향이 나는 기분이라 색다르긴 하지만 “우와 이거 킹왕짱!” 이런 맛은 아니었는데 아내는 아주 대만족이라고.
그리고 저녁에는 원두 자체의 맛이 어떤지 보기 위해 에스프레소를 내려보았습니다…
먼저 원두 담아주신 봉투. 블렌드 이름은 “눈의 꽃”이라고 한다. 겨울 한정판으로 만드신 것. 로스팅한 지 4일 되었다. 원래 갓 볶은 원두보다 5일 정도 지난 원두가 최고의 맛을 낸다고 한다. 그래서 아메리카노 용으로 블렌딩한 원두는 아직 맛이 덜 배었다며 추천하지 않으시더라. 역시….. 그 분 최소 전문가…..
원두 상태도 좋은 것 같다. <왕싼커피>에서 샀던 재떨이 맛 나는 원두는 너무 강하게 볶아서 아주 시커멓고 탄 냄새가 났는데(왕싼커피 후기 참조) 이건 향이 좋았다. 약간 새콤한 향과 고소한 향이 같이 남. 색깔도 노릇노릇 갈색갈색 딱 좋다.
원두를 갈아봅시다. 포렉스 세라믹 핸드밀로 최고로 곱게 갈아봄(아까 낮에는 -3단계로 갈았었다).
그러는 동안 에스프레소 잔(전문용어로 데미타세라고 함)과 포터필터는 따뜻한 물에 데워줘야 (한다고) 함.
곱게 갈린 원두. 핸드밀로도 저 정도로 곱게 갈 수 있습니다.
탬핑을 마친 모습. 아, 근데 좀 수평이 안 맞다. 49.5mm짜리 우드그립 탬퍼 사고 싶다….
자, 이제 ROK Presso를 이용해서 직접 내리는 모습을 감상하시겠습니다.
대참사……
너무 곱게 간 것이 제 1 이유요, 수평이 안 맞은 것이 제 2 이유인 것 같다. 적당한 곱기로 갈면 저렇게 힘도 들지 않고 꿀처럼 쭈욱 잘 떨어진다. 최대한 곱게 갈아서 최대한 성분을 많이 뽑아먹으려고 너무 욕심을 냈다……
그래도 커피는 잘 뽑혀 나왔다(너무 당황해서 사진은 못 찍음).
에스프레소 스트레이트로 그냥 마셨는데 맛을 평가하자면(다시 말하지만 저는 전문가가 아닙니다),
향 : 달콤하면서도 시원한 향기가 난다. 정말 시원한 향기가 남!
맛 : 새콤하면서 약간 쌉싸름하다. 많이 쓰지 않다. 그러면서 가볍고 산뜻한 느낌의 맛이다.
마신 후 : 새콤하고 달콤한 과일같은 맛이 입 안에 맴돈다. 그리고 양치한 듯 시원한 느낌이 계속되면서 아주 약간 스모키한 기운이 느껴진다.
아시아 쪽 원두가 이런 새콤한 맛이 난다고 어디서 주워들은 것 같은데 커피에서 이런 맛이 정말 나는구나 싶었다. 내 입맛에 딱이야! 이런 맛은 아니지만 아무튼 좋은 원두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아마 여자들이 이런 맛을 좋아할 것 같다(대체로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새콤한 과일을 좋아하죠).
이런 좋은 원두들을 먹어보고 나서 다시금 쓰레기 원두 통을 열어본다. 냄새에서부터 확 탄내가 올라오는 게 정말 도저히 못 먹을 것 같다. 특히 시음용으로 받은 원두는 이제 기름 쩐내가 스믈스믈 올라오는데 돌아버리겠다. 방향제로 쓰기에도 역한 그런 냄새가 난다.
인생은 별로 길지 않은데 맛 없는 것을 먹고 마시며 살기에는 너무 아깝다. 한 잔을 마셔도 좋은 것을 마셔야겠다는 게 요즘 하고 있는 생각이다. 그래서 오늘 커피를 다섯 잔 정도 마신 것 같다….. 물금 최대 카페인 소비가구일 듯.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언제든 “좋아요!” (저는 관심병종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