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명이 사는 마을이 있다. 어느 날 이웃 마을에서 독재자가 한 사람 나타나 마을을 장악했다. 마을 주민들은 처음에 완강히 반항했으나 독재자는 강력한 힘으로 마을을 손아귀에 넣었고, 곧 저항은 잠잠해졌다.
이런 경우, 이 독재 상태를 뒤집기 위해서는 최소한 독립투사가 오십 명은 되어야 한다. 이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은 잠재적으로 독재자의 편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불만 속에서 독재자가 시키는 일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반 강제적인 일이었을지라도 어쨌거나 결국은 자신이 한 일이기 때문에 훗날 어이 없게도 그 업적에 대해 열렬한 지지를 보내게 된다. 나아가 독재자에게 반대하지만 투쟁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 평화주의자임을 자처하며 체제를 전복하고자 하는 사람을 성격 파탄자, 외골수, 매국노로 몰아간다. 이에 독립투사는 점점 더 고립되고 외로운 투쟁을 하게 된다.
실제로 독재자는 백을 빼앗고 하나를 주었을 지라도 그 하나에 대해 민중의 열렬한 지지를 받게 되며, 훌륭한 통치자로 둔갑하게 된다. 민중이 권력에 세뇌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를 거쳐왔던 독재자들은 현재 우리가 평가하는 것보다 훨씬 악랄한 놈이었음에 틀림없다. 아주 교묘하고 영악했기 때문에 대중을 완벽하게 속일 수 있었고 세뇌당한 대중은 오히려 그 시절에 대한 향수마저 느끼게 된다. 따지고 보면 참 억울한 일이다.
이 이야기는 여러 현상에 빗대 볼 수 있는데, 아직도 우리가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 아직도 우리가 통일을 이루지 못하는 현실도 그 연유는 이러한 것이다. 다른 중요한 사안을 처리하느라 과거 청산, 남북 통일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고들 하는데 그것은 얼마나 엄청난 착각인가. 단언컨대, 시간이 더 지나면 더 힘들어진다. 아직 맺고 끊음이 수월할 때 해결해야 한다. 예컨대 먼 훗날 ‘갑’이라는 사람의 증조 할아버지가 악랄한 친일파로 밝혀져 처벌을 하려 하는데, 알아보니 ‘갑’의 외할아버지가 만주벌판을 누비던 독립투사였음이 밝혀진다면 이 난감한 상황을 어찌하겠나. 먼 훗날 남과 북의 말과 글이 너무나 달라지고, 남북의 주민들이 통일해야 하는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면 이 갑갑한 상황을 어찌하겠나. 불행하게도 비극은 이미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