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큰 불났네.

밤 아홉 시 반 경이었다. 아침에 피뽑고 어질어질하길래 오늘은 꼭 원없이 야식을 먹어야겠다 생각하고 닭을 시켜놓고 희희낙락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갑자기 불이 나서 상황실로 달려갔다. 보통 불이 나도 백의 아흔 아홉은 오인출동이기 때문에 금방 끝난다. 특히 동작구는 불이 거의 안나는 좋은 동네다. 그래서 걱정 안했다.

그런데 이게 왠 걸? 119 수보가 수십 통 들어오고 불꽃이 보이고 연기가 나오는 ‘진짜 화재’란다. 가보니 아우, 빡쎄다. 보통 소방서에는 정기적으로 기자들에게서 전화가 오고, 거의 별로 전해줄 말이 없게 마련인데 이번에는 기자들이 먼저 알고 물어온다. 불이 났다고는 했지만 바빠 죽겠는데 매너 없게 자꾸 이것저것 물어본다. 이런 젠장. 기자들도 급한 마음에 그런 것이겠지만 그러면 우리는 아주 정신없다. 혹 이 글 보시는 기자분들, 그럴 때는 느긋하게 좀 기다리슈. 상황 정리되면 어련히 가르쳐 드릴까. 어차피 진압 중에는 우리도 아는 거 없어요.

불은 금방 잡았으나 인명검색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리고 인명검색하다 보니 죽은 사람 둘이 나와서 일이 커졌다. 질식도 아니고 불에 타버려서 신원파악도 안된다(참고로 시체가 불에 타면 심지어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알아내기 어렵다. 쪼그라들어서 키, 나이 등을 파악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다.) 그러니 곧 소방서에 기자들이 들이닥치고, 국회의원 비서라는 사람한테서도 전화오고, 쓰리스타, 포스타도 왔다갔다 하고……. 젠장 그 와중에 닭은 식어만 가고 OTL……

이것으로 올해 동작구에서 화재 때문에 죽은 사람이 셋이 되었다(보라! 이 얼마나 안전한 동네인가!) 윽, 그런데 셋 다 내가 당번일 때 난 사고다. 온 지 석달 밖에 안됐는데 이 무슨 빡쎈 경우냐! 아무튼 대충 정리되고 와서 다 식은 닭을 먹으니 그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없다. 이어 열 한 시 근무까지 끝내고 새벽 두 시쯤 돌아와 보니 속 편한 내근들은 다들 자고 있다. 아아…… 이럴 때 느끼는 소외감, 박탈감, 안타까움, 억울함 그리고 뭐랄까, 배고픔이란 -_-;;;

정말 가끔 있는 일이지만 소방서에는 이런 일이 어쨌든 있으니까 소방관이 참 중요하기는 중요한 사람이다. 그럴 때 소방관이 없으면 누가 미쳤다고 불난 데 뛰어들어가 불을 끄고 사람을 구하겠는가. 인터넷 보면 직원들이 소방서에서 하는 일 없다며 흉보는 의방들 많은데, 나는 가끔 일어나는 이런 일 때문에 소방관들을 참 고맙게 생각한다. 정말로. 뭐, 우리 서 분위기가 참 좋아서 별다른 불만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다시 새벽. 5시에 또 근무라 일어나 TV를 보니 간밤에 난 화재가 뉴스에 나온다. 정말 드문 경우다. 아아! 그런데 우리에게는 굉장히 큰 일이었으나 뉴스에서는 제일 끄트머리에 아주 잠깐 나오는 작은 기사다. 세상에는 이것보다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어찌나 많이 일어나는지! 얼마 전에 헌인마을 가구공장에서 불 난 것도 정말 그 규모에 비해 코딱지만하게 보도되던데. 참으로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은가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방금 KBS 6시 뉴스에 머릿기사로 나오네.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