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로 읽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 (사실 나는 누구나 읽었다는 그 유명한 ‘개미’조차 아직 읽지 않았다.)
베르베르 특유의 박학다식함이 책 처음부터 끝까지 진하게 묻어난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마치 재미있는 해부학 책 하나를 읽고 있는 것만 같다. 다만 너무 많은 지식을 전달하려다 보니 문학적인 아름다움은 찾아보기 힘들며, 거의 무협지류의 극적 전개를 이루게 된 점이 아쉽다. 또한 이야기를 재치있게 풀어 나가다가 결말은 어정쩡한 휴먼 스토리 해피 엔딩 비슷하게 맺어 버려서 안타깝다. 번역가에게 해박한 전문 지식이 없는 탓인지 번역에도 다소 잘못된 부분이 보인다. 내가 지나치게 민감한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책 전체에 걸쳐 잘못된 어휘 선택이 많이 보였다(정보 처리 기사도 조금 잘못된 선택인 것 같다). 그리고 상황을 너무 자세하게 묘사한 나머지 나중에는 짜증이 난다. 책 중간에, 사람들은 이상해 보이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그럴듯한 거짓을 더 좋아한다 했는데 베르베르 자신이 이미 이를 어긴 셈이다.
그러나 재미있는 책임에는 틀림없다. 연관성이 거의 없어 보이는 두 이야기가 번갈아 가며 반복되다가 소설 후반부에 이르면 서서히 그 연관성이 드러나게 만드는 전개 구조는 나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하였다. 그리고 소설 이곳 저곳에 깔려 있는 복선과 은유는 너무나 절묘해서 읽는 내내 수십번도 넘게 깜짝 놀라게 된다. 묘한 중독성이 있어서 상권 후반부 쯤 가게 되면 빠른 극적 전개에 스스로 빠져들었다. 굉장한 흡입력이다.
좋은 소설 한 권을 쓰기 위해서는 그 방면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그 지식을 문학적으로 아름답게 풀어나가기 위한 능숙한 글솜씨가 필요하다. 베르베르는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음에는 틀림 없으나 글솜씨는 아직 서투른 것 같다. 단순히 재미있는 과학 소설을 찾는 독자에게 적합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