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무심하시다.

“모두를 두루 사랑한다는 말은 사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 혹은 미워한다는 개념은 사실 굉장히 상대적인 개념이다. 누군가가 나를 사랑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다른사람에게는 쏟지 않는 특별한 감정을 나에게 품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 감정의 깊이를 절대적으로 잴 수 없으므로 “누가 나를 사랑한다.”를 바꾸어 말하면 “누가 나를 다른 사람보다는 조금 더 사랑한다.” 정도로 말할 수 있겠다.그 사랑의 정도가 깊고 얕고에 상관 없이 나에게 다른 사람과는 다른 대접을 해 준다면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는 것은 결국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것과 똑같다는 말이 된다. 적어도 사랑을 받는 사람이 그 사랑을 느낄 수 없으니 그렇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신. 신이 누구신가. 세상에서 가장 공명정대하시고 가장 합리적이신 분이 바로 ‘신’ 아니시겠는가. 그러므로 신은 우리 모두를 ‘똑같이’ 사랑하시며 게다가 기왕 사랑하실 것이면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사랑하신다. 모든 인류를 똑같이 사랑하시면서 취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인류에게 사랑을 100만큼 주시든, 0만큼 주시든, 혹은 -100만큼 주시든 그 결과가 똑같다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무한한 사랑의 결정체이신 신께서는 사실 무한히 무심하신 것이다.

어두운 밤, 논두렁에서 사람을 죽이는 사람, 벌건 대낮에 주택을 터는 사람, 승합차로 여대생을 납치하는 사람, 헛된 권력으로 사람을 짓밟는 사람……. 신은 이 모든 것을 보고 계시지만 아무런 손을 쓰시지 않으신다. 신은 너무나 공명정대하시고 합리적이시므로.

그러므로 신을 사랑하고 경배한다는 것은 따지고 보면 굉장히 소모적이고 불합리한 일이다. 내가 아무리 열렬히 사랑하여도 신께서는 나만 특별히 어여삐 여기실 수 없다. 기본 설정 자체가 그렇다. 만약 신께 열렬히 경배하는 나만 어여삐 여기신다면 세상은 광신도 천국이 되어 인류는 자멸할 것이다. 설정상 신보다 더 든든한 후원자는 없으니 누가 감히 예배가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하겠는가.

사랑하면 사랑하고 미워하면 미워하는, 혹은 사랑해도 미워하고 미워해도 사랑하는 관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런 비합리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어리석은 관계가 나는 좋다. 그러므로 나는 있는지 없는지조차 불분명한 신을 사랑하기 보다는 차라리 내 곁에서 내가 직접 느낄 수 있는, 바로 당신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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